생성형 AI가 언어 산업의 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번역, 통역, 글쓰기, 교육 콘텐츠 제작까지 AI가 인간의 언어 영역 깊숙이 들어오면서, 언어 전문가들은 새로운 질문 앞에 서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변화를 위협으로만 보지 않는다. 동시통역사 출신 성진선 작가는 AI 시대의 변화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창작의 길을 발견했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TEFL 과정을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통역 전문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국회, 외교부, 삼성전자 등 주요 기관과 기업의 통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전문 통역사다. 이후 영어 교육과 입시 컨설팅, 프리미엄 학습관리 스튜디오 『엉덩이힘』 운영 경험을 더하며 언어와 사람, 성장의 연결점을 넓혀왔다.
이제 그는 AI 동화작가 JIN으로 또 다른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첫 그림책 『너를 부르는 이름』은 열일곱 해를 함께한 반려묘 구름이와 마중이를 떠나보낸 뒤, 그리움과 기억을 이야기로 되살린 작품이다. 영어판 『A Name to Call You Home』은 아마존 킨들을 통해 먼저 공개됐으며, 한국어 종이책은 오는 6월 26일 북메이트에서 정식 출간된다.
Q1. 동시통역사에서 AI 동화작가로 전환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동시통역은 제게 첫 번째 언어였습니다. 누군가의 말과 감정, 맥락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이었죠.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언어 전문가로서 익숙했던 기반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위기처럼 느껴졌지만, 곧 질문이 생겼습니다. 인간의 언어 감각은 앞으로 어디에서 더 빛날 수 있을까. 그 답이 창작이었습니다. AI를 경쟁자가 아니라 상상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바라보면서, 저는 통역사가 아닌 이야기의 창작자로 두 번째 언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Q2. 생성형 AI의 등장이 언어 전문가에게 어떤 충격으로 다가왔나요?
A. 통역과 번역은 오랫동안 인간의 섬세한 감각이 필요한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단어만 바꾸는 일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분위기, 문화적 배경까지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I는 매우 빠른 속도로 그 영역을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언어를 직업으로 삼아온 사람에게는 분명 불안한 변화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AI가 하지 못하는 인간의 경험, 상실, 사랑, 기억 같은 감정의 층위가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습니다.
Q3. 성진선 작가에게 ‘언어’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제게 언어는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언어는 사람의 마음이 지나가는 통로이고, 기억이 머무는 그릇입니다. 통역사로 일할 때도 저는 문장을 옮긴다기보다 그 말이 나온 상황 전체를 옮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언제,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언어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감각입니다. 이제 저는 그 감각을 통역 부스가 아니라 동화와 그림책 안에서 새롭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Q4. 첫 그림책 『너를 부르는 이름』은 어떤 작품인가요?
A. 『너를 부르는 이름』은 사랑했던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쓰인 그림책입니다. 열일곱 해를 함께한 고양이 구름이와 마중이를 떠나보낸 뒤, 남겨진 마음을 어떻게 붙들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호명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라진 존재를 마음속에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뿐 아니라, 소중한 존재와의 이별을 경험한 모든 독자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작품입니다.
Q5. 반려묘 구름이와 마중이는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A. 구름이와 마중이는 제 삶의 아주 긴 시간을 함께한 가족이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 발소리,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나누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떠난 뒤 집 안의 공기와 하루의 리듬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 빈자리를 단순히 슬픔으로만 남겨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함께한 시간을 이야기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너를 부르는 이름』은 구름이와 마중이를 다시 붙잡으려는 책이 아니라, 사랑했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담은 책입니다.
Q6. AI를 활용한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A. AI는 매우 빠르고 유용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출발점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AI를 사용할 때도 감정의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어떤 장면이 필요한지, 어떤 문장이 독자에게 오래 남을지, 어떤 이미지가 상실과 위로를 함께 전할 수 있을지는 인간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AI는 그 감정을 시각화하고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AI가 만든 책이라기보다, 인간의 기억과 AI의 가능성이 함께 만든 창작물에 가깝습니다.
Q7. 영어판 『A Name to Call You Home』을 먼저 선보인 이유가 있나요?
A. 저는 오랫동안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서 일해왔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가 한 언어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떠나보내는 마음은 국경이나 언어를 넘는 감정입니다. 영어판 『A Name to Call You Home』을 아마존 킨들을 통해 먼저 공개한 것은 글로벌 독자와도 이 감정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판 『너를 부르는 이름』은 그 감정을 더 깊고 섬세하게 담아 종이책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Q8. 통역사로서의 경험이 동화 창작에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A. 통역사는 말의 표면보다 그 아래에 있는 의도와 감정을 읽는 사람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직접 표현하지 않은 뉘앙스까지 포착해야 하죠. 동화 창작도 비슷합니다. 어린이 독자와 어른 독자 모두에게 닿으려면 문장은 단순해야 하지만 감정은 얕아서는 안 됩니다. 통역 현장에서 익힌 집중력, 맥락을 읽는 힘, 말의 온도를 조절하는 감각이 그림책 문장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결국 통역과 창작은 모두 마음을 다른 형태로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9. 『너를 부르는 이름』을 어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A. 이 책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분들께 가장 먼저 닿기를 바랍니다. 특히 오랫동안 함께한 존재를 가족처럼 사랑했던 분들이라면, 책 속의 감정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 책은 상실을 경험한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사랑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를 부르는 이름』은 슬픔을 억지로 지우는 책이 아니라, 사랑했던 시간을 따뜻하게 기억하도록 돕는 그림책입니다.
Q10. 앞으로 성진선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창작 방향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앞으로도 인간의 감정과 AI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고 싶습니다. AI 시대에는 누구나 더 쉽게 이미지를 만들고 문장을 쓸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통역사로서 쌓아온 언어 감각과 교육자로서 만난 사람들의 성장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인 기억과 상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따뜻하고 깊이 있는 작품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AI에게 대체되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창작자로 남고 싶습니다.
출간 정보
『너를 부르는 이름』은 JIN 성진선 작가의 첫 그림책으로, 오는 6월 26일 종이책으로 정식 출간된다. 발행은 북메이트가 맡았으며, 판형은 216×216mm, 정가는 16,000원이다. 영어판 『A Name to Call You Home』은 아마존 킨들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동시통역사, 영어 교육자, 입시 컨설턴트, 그리고 AI 동화작가로 이어지는 성진선 작가의 행보는 AI 시대의 언어 전문가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너를 부르는 이름』은 그 가능성의 첫 장면이자, 사랑했던 이름들을 다시 부르는 따뜻한 기록이다. 성진선 작가의 다양한 창작물은 www.raineythecat.com에서 만나볼 수 있다.

















